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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일반

그때 그 기술, 사람, 그리고 회사들

비교적 무난하게 또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다행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유연하고 효율적이며 생산적이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기술쪽을 보완하기 위해 비즈니스에 더욱 우선순위를 두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 지갑끈이 느슨해진 것을 목격하고 있을 것이며, 분석가들은 2004년 IT 예산이 2.3%에서 5% 이상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지난 한 두 해 동안 붙들어 왔던 일부 프로젝트들을 위해서는 좋은 조짐이지만 여전히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는 있다.

당신의 결정을 돕기 위해, 美 네트워크컴퓨팅에서는 그동안 다뤄온 7개 부문의 핵심 시장을 평가하고자 서바이버 가이드를 마련했으며, 리얼월드 랩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제품을 평가하고 변화하는 동향을 분석해 온 기술 전문가들이 직접 나섰다.

2004년에는 비즈니스 전략을 네트워크 컴퓨팅의 공식적인 핵심 취재 부문으로 추가하기로 했으며, 기술 구매를 위한 사업적 정당성을 구축하는 것을 돕기 위해 업체들의 존속성을 계속 평가해 나갈 것이다. 비즈니스 에디터인 데이비드 조아킴이 IT 비즈니스 관계의 상황에 대해 분석한 기사가 본문에 들어 있다.

그리고 과거를 되짚어본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발행인 겸 전 편집장이었던 프리츠 넬슨에게 현재의 IT 업계를 판도를 결정한 기술, 사람, 그리고 회사에 대한 회고와 전망을 얘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선 그와 함께 감상적인 여행부터 시작해보자.


[SURVIVOR’S GUIDE TO 2004] 1. 그때 그 기술, 사람, 그리고 회사들

실패와 악몽, 그리고 도산,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



우선 밝혀두건데, 필자는 이런 종류의 회고 기사를 쓰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 편집자는 단지 회고 기사가 유행이고 나 역시 그런 류의 사람일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원고를 청탁했을 것이다.

필자는 팀 버너 리(Tim Berner-Lee: 월드 와이드 웹의 창시자)가 막 웹을 생각해냈을 당시 한 회사의 IS 부서에서 근무를 했다. 당시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다이얼 아웃 네트워크 모뎀 풀을 구성하는 것이었는데, 아티소프트(Artisoft), 반얀(Banyan), 헤이즈(Hayes), 메지(Madge), 프로테온(Proteon), 라칼(Racal), 시놉틱스(Synoptics), 웰플릿(Wellfleet) 등의 굵직굵직한 업체들이 끝없이 당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계속 앞으로 나가는 쪽을 선택해 왔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머리를 굴리고 기술의 역사를 돌이켜 봄으로써 제품의 실패와 이행의 악몽, 그리고 회사의 도산을 막을 수 있게 돕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말을 하며, 나는 이 여행에서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지난 날 기술과 회사의 흔적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으며, 어떤 것들은 이전 모습의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고 완전히 알아차릴 수 없게 된 것들도 있다. 그리고 별다른 허풍 없이 처음 약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를 이뤄낸 것들도 있다. 이들이 이룬 변화와 변모는 흥미로운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게도 해준다(예를 들어 이 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 웹사이트에 있는 프로테온 링크를 클릭하면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게 된다).

2003년 8월 7일자 컬럼에서 필자는 전설적인 SNA 게이트웨이 업체인 래빗 소프트웨어(Rabbit Software)를 포함해 PDP-11의 길을 걸어온 몇 개 회사를 언급한 바 있는데, 여기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래빗과 그 종말에 대한 비화를 보내 왔다. 덕분에 나는 래빗이 미들웨어란 말을 만들어 특허를 냈다는 사실, 그리고 이 회사가 노벨에 인수될 뻔 했었다는 사실, 그리고 결국은 탱그램(Tangram)과 합병을 했으며 이 회사는 2001년 래빗 제품 라인을 종결시켰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주도한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야콥 렉터라는 TN3270을 만든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물론 SNA의 죽음을 알려주는 조종들 가운데 하나였다. 렉터는 현재 다른 유망 기술인 MPLS에 참여하고 있다.

TCP/IP는 FTP 소프트웨어, 쿼터덱(Quarterdeck), TGV, 월렁옹, WRQ 등 9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았던 회사들의 탄생을 가져왔다. 하지만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런 회사들의 상당수를 돌보게 됐으며(여기서 돌본다는 말은 산 채로 먹었다는 뜻이다), 시스코가 TGV 등 회사들을 돌보게 되었다.

이 시절 시스코의 강적은 케이블트론(Cabletron)이었는데, 케이블트론은 통합 경향을 따르는 대신 아프리즈마(Aprisma), 엔터라시스(Enterasys) 및 리버스톤(Revier-stone)을 만들어 자체 분열을 시도했다. 구 케이블트론 CEO였던 크레이그 벤슨(Craig Benson)은 현재 뉴 햄프셔 주지사가 됐으며, 그의 파트너이자 공동 설립자였던 로버트 레빈(Robert Levine)이 야전 부대에서 영업 회의들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 참가하던 두 사람이 긴 회의가 너무 싫어서 의자가 없는 높은 테이블을 가져다 놓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케이블트론은 또한 시큐어 패스트 버추얼 네트워킹(Secure Fast Virtual Networking)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정말 좋았던 그 시절이었다.

컴퓨서브(CompuServe)나 유유넷(UUnet)도 먹어치운 월드콤(WorldCom)에게 먹힌 MCI는 어떤가. 처음 월드콤은 MCI의 이름과 그 답답한 장거리 회사의 유산을 벗어버렸지만, 최근 신세대 서비스 사업자 월드콤으로서 그 이름을 다시 MCI로 바꾸어 월드콤의 실추된 이미지를 제거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마이클 카펠라스(Michael Capellas)로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이 CEO로 있던 컴팩을 먹어치운 휴렛팩커드에서 실권을 잡았던 사람이다.

우리는 계속 돌고 돌아간다. 10년 전 노벨은 AT&T로부터 USL(Unix Systems Labs)을 사들였다. 올해 노벨은 수세(SuSE) 리눅스를 샀다. 본지 자매지인 VAR비즈니스의 기술 에디터이자 네트워크 컴퓨팅의 창간 편집장인 데이비드 스톰은 이것이 계속 되풀이 되는 데자뷰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늘날 리눅스 쪽의 가장 큰 가시는 SCO다. 그 뿌리는 캐노피 그룹(Canopy Group)에 있는데, 이 곳은 레이 누다(Ray Noorda)가 지은 집에서 성장한 벤처 자본 민간 회사며, 누다는 80년대와 90년대 초반 노벨의 CEO 겸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누다는 AT&T에서 USL을 사들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배후 인물이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바이버’라는 이번 호의 주제에 보조를 맞춰 IT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어떤 경우는 지금도 미치고 있는 기술과 사람, 그리고 회사들을 함께 묶어 보았다.


사라지고 잊혀진 기술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알파 프로세서
초창기 64비트 칩 가운데 하나인 알파는 암을 치료하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다 주며 DEC(Digital Equipment Corp)의 부담을 줄여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DEC에서 나오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DEC 플랫폼에서만 돌아가며 다른 곳들은 유닉스 플랫폼을 선택했다. 컴팩은 DEC가 남긴 것들을 산 후 알파를 계속 추진했지만 HP가 지난해 마침내 그 행보를 중단시켰다. 한바탕 소동만 남기고 사라진 기술이다.

X.400
X.400을 기억하는가? 흥미롭고 혁신적이기까지 한 이 텔레콤 표준은 사람들이 명함에 이메일 주소를 넣기 시작했을 무렵에 태어났으며, 위치나 메일 시스템, 혹은 전송수단에 관계없이 이메일로 즉시 모두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약속을 했다. 각각의 X.400 주소는 1천100개 문자 길이로 돼 있다.

제너럴 매직(General Magic)의 매직 캡(Magic Cap)
애플 뉴턴이 시대에서 몇 년을 앞서 갔다면 애플에서 분사한 제너럴 매직의 매직 캡은 몇 광년을 앞서 갔다. 이 회사의 소프트웨어 대행자 기술인 텔레스크립트(Telescript)를 이용해 이것은 웹에서 ‘자동으로’ 꽃을 주문하고 식당을 예약하며 주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제너럴 매직은 결국 여러 가지들 중에 음성 인식으로 이동을 했으며, 2002년 마침내 이것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오픈독(OpenDoc)
교차 플랫폼 기술인 오픈독은 애플과 IBM, 로터스 등의 회사들(마이크로소프트는 참여하지 않았음)의 합작 개발품으로, 사용자가 한 문서에서 실행될 수 있는 맞춤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게 해주도록 만들어졌다. 지금도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가끔씩 들린다.

입실론의 ‘컷 쓰루(cut-through)’ 스위칭
입실론(Ipsilon)은 이것이 라우터 백플레인에서 ATM과 IP의 좋은 것만을 결합시킴으로써 네트워킹을 극적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컷-쓰루 스위칭 기술은 사실상 RFC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 기술을 신봉했던 다른 업체는 유일하게 노키아 뿐이었으며, 이 회사는 97년 입실론을 인수했다. 그 후 노키아의 파트너인 체크포인트 테크놀로지즈는 자사 방화벽에 라우팅 기술을 집어 넣었다.

ATM에서의 다중 프로토콜
ATM과 IP의 결합을 위해 시도되었던 또 하나의 실패작.


잊혀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은 것들

무선 DSL
스프린트와 월드콤은 모두 대중들에게 무선인터넷 액세스를 전달한다는 희망에서 MMDS 대역 라이선스에 큰 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가시선이 필요해 설치상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지만, 모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블루투스(Bluetooth)
과대포장이 되긴 했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그럴 만한 이유도 충분하다. 랜 애플리케이션에서는 802.11 만큼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지만 간단한 접속용으로나 제한된 거리 이상에서 비교적 느린 데이터 속도로 케이블을 대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토큰 링(Token Ring)
처음에는 FDDI로, 보다 최근에는 RPR로 두 번 부활했다.

푸시(Push)
한 때는 진정한 웹 콘텐츠 전달 기술로 일컬어졌으며 포인트캐스트(Pointcast)에서 주도했던 푸시 기술은 결국 소프트웨어 배포 툴로서 자기 자리를 찾게 되었다.

네트워크 컴퓨터(NC)와 넷PC
썬과 기타 업체들이 이 단말기 형태의 기계가 데스크톱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을 기억하는가? NC는 그 사촌인 씬 클라이언트 소프트웨어와 함께 이제 수직 시장의 틈새를 채우고 있다.


기타 최고들

노벨 애프웨어(Novell Appware)

애프웨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사라졌겠지만 노벨은 2002년 인수한 실버스트림(Silverstream) 애플리케이션 서버의 새 이름인 익스텐드(exteND) 애플리케이션 서버 판촉을 강화하기 위해 웹 서비스 채택을 지지하고 있다. 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는 RAD(Rapid Application Development)와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을 위해 준비돼 있으며 노벨은 개발자들이 데이터 센터에 익스텐드를 가져다놓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리듐(Iridium)
모토로라의 회장 로버트 갤빈(Robert Galvin)과 기타 모토로라 간부들은 초대형 프로젝트가 필요했으며, 이리듐이라는 88 저궤도 위성 투자가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그러나 위성에 ATM 스위치를 구축한다? 무리가 있는 말이다.

프라이버시 향상 메일(Privacy Enhanced Mail)
멋진 시도였다.

VRML(Virtual Reality Markup Language)
VRML은 웹에서 우리가 보는 방식을 바꾸려 했다.

게시판 서비스(Bulletin-board services)
AOL을 위시한 다른 온라인 서비스들에 의해 난도질 당했다.

PC Jr.
아마 치클리트 키보드(chiclet keyboard)가 거기 들어 있을 것이다.

IBM의 마이크로채널 버스 아키텍처
가끔씩 IBM이 업계 표준을 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23ESDI 드라이브
SCSI 공격을 모조리 제거하라.

PKI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지 못했다.

아이오메가의 재즈 및 베르누이(Jazz/Bernoulli) 드라이브
누가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할까?


사람 & 사람

빈트 서프(Vint Cerf), 지칠줄 모르는 선동자

◀ 빈트 서브. 인터넷 창시자이자 상용화의 주역중 하나.

물론 인터넷은 세상을 변화시켰지만 그 도래가 ‘언제 어디서’식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은 점진적으로 출현했으며,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고 아마도 결국에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초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의 시조이자 상용화의 주역 중 하나인 빈센트 서프가 계속해서 미래를 향한 초석을 오늘날 깔아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 기술이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된 지 16년 후, 그리고 NASA와 DARPA를 위시한 미국 정보 기관들에서 이것을 사용하게 된 지 약 5년 후인 1988년이 되어서야 서프는 당시 쓰리콤의 CEO였던 에릭 베나모(Eric Benhamou)와 함께 인터롭에 가서 그 곳의 거대 업체 전시장에서 기적처럼 자신의 나아갈 바를 발견했다. 쇼 비용을 계산한 후 그는 회사들이 제품과 브랜드를 선전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연방네트워킹위원회를 설득해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백본에 연결되는 MCIMail(그는 여기 엔지니어를 도운 바 있다)에 접속할 수 있게 허가를 받았다.

1989년 즈음에는 NYSERNet에서 분사한 PSINet, 비영리 회사인 유유넷, 그리고 제너럴 아토믹스(General Atomics)에서 운영하는 서프넷(Cerfnet) 등 세 곳의 상용 인터넷 사업자가 있었다.

나머지는 역사가 말해준다. 이메일이 최초의 상용 킬러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이 됐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시스템에 TCP/IP를 탑재했으며, 버너스 리와 그 친구들은 월드 와이드 웹을 만들었다.

서프는 VoIP(voice over IP)를 인터넷 덕분에 존재하게 된 최초의 현대 기술들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그는 “올해는 VoIP가 실제로 자리를 잡게 된 첫 해”라며 “그 이전에 10년이라는 떠들썩한 시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니에서 자사의 모든 소비자 장비가 2006년까지 인터넷 지원형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예로 들며 엔터테인먼트를 또 하나의 ‘파괴적’이지만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언급했다.

써프는 또한 IPv6의 주요 제안자인데, 이것은 수년간 어둠 속에서 말들만 오갔지만 아직 미국에서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그는 IPv4의 실패를 NAT(Network Address Tran slation)로 향하고 있는 ‘위험한’ 동향 탓으로 돌렸다. “우리는 종단간 어드레스 공간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서프는 특히 음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엔터테인먼트 및 그리드 컴퓨팅의 맹공으로 인해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크고 고갈되지 않는 어드레스 공간을 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일본과 유럽 지역에서 의미심장하게 진행되고 있는 IPv6 배치를 지적했는데, 일본에서 IPv6는 인터넷 지원형 자동차 출시를 가져오기도 했다.

서프는 현재 MCI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기술 전략 선임 부사장으로서 이 회사가 회사와 고객을 준비시키도록 돕고 있다. 그는 “스위칭 패킷은 마진이 가장 좋은 사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HP 및 IBM과 일하고 있으며, 써드파티에서 MIC 네트워크에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이전에 아키텍처 및 기술 선임 부사장으로서 일을 했을 때는 회사에서 VoIP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게 도운 바 있으며, MCI 백본에 보안 요소가 들어가게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서프는 또한 제트 프로펄션 랩(Jet Propulsion Labs)에서 객원 과학자로 있으면서 우주 기반의 행성간 통신용 표준을 만들고 있다. 그는 대기시간과 대역폭 고려조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많은 결함과 행성이나 위성들처럼 느린 움직임을 감안한 새로운 프로토콜 스택을 구축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사실 이 새로운 스택은 이런 모든 특성들을 고려하려면 저장 후 전송(store-and-forward) 모드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목표는 모든 공간 미션용으로 사용 가능한 표준 프로토콜 세트를 만든다는 것이다. 최근 두 개의 화성 미션에서 이 스택의 링크 계층을 사용했으며, 계획되로만 된다면 10년 후쯤 화성 통신 인공위성(Mars Communication Orbiter)에서 완전 행성간 스택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서프는 나머지 시간을 정치적 긴장이 감도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이사회의 회장직으로 보내고 있는데, 1999년부터 이 일을 맡아오면서 그가 성심성의를 다한 일들 가운데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기술 교육 과정 장려와 RFC 편집 지원 등이 있다.


칼 맬러머드, 인터넷 토크 라디오의 아버지

◀ 킬 맥러머드. 1990년대 인터넷라이도의 창시자.

아마도 달라스 매버릭의 소유자인 마크 커번은 들어 보았겠지만 칼 맬러머드(Carl Malamud)란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브로드캐스트닷컴(Broadcast.com)을 커번이 설립할 수 있게 해준 인터넷 라디오 시대를 연 공로자에게 NBA 심판들이 감사할 리는 없을 것 같다. 맬러머드는 뿐만 아니라 다른 정말 멋진 성과들의 배후 주동 인물이기도 했다.

이 풀브라이트 헤이즈 박사는 한 때 네트워크컴퓨팅지의 필자였으며 90년대 초반 영향력 있는 업계 대변가이기도 했다. 또한 책을 쓰고 세미나를 열며 연방준비위원화와 국방성, 합참 및 기타 정부기관을 위한 연구 및 컨설팅을 맡고 있기도 하다.

밀러머드는 비영리 회사인 인터넷 멀티캐스팅 서비스(Internet Multicasting Service)의 일부로 인터넷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인터넷 토크 라디오(Internet Talk Radio)를 만들었다. 그는 “우리는 공중파 라디오 방송국을 시작했다”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상용 방송국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 왔으며, 커번과 리얼네트웍스의 회장 겸 CEO인 로버트 글레이서가 둘 다 일을 잘 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맬러머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인프라 구축에 1억달러를 조달해 인터넷 1996 월드 익스포지션(In-ternet 1996 World Exposition: park.org)을 만들었다. 또 이 경험을 살려 책을 집필하기도 했으며 그 책의 서문으로는 달라이 라마의 글이 실렸다. 그는 일본의 게이오기주쿠 대학과 MIT의 미디어 랩에서 객원 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최초의 SEC 공식제출 서류(SEC filings) EDGAR 아카이브를 만들었고, 후에 인터넷 표준이 된 XML 기반 전송 프로토콜인 BEEP(Blocks Extensible Exchange Protocol)를 개발하고 지금은 사라진 인비저블 월즈(Invisible Worlds)를 설립했다.

맬러머드는 현재 결혼해 두 살 된 아이를 두고 있다. 그는 자원 소방관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으며, 아내와 함께 예술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험난한 기술 세계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는데, 집필 활동 외에도 DNS 보안을 비롯한 프로젝트들을 다루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컨소시엄에서도 작업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멀리 떠나 있을 수는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단 린치, 기술 커뮤니티의 환상가

◀ 단 린치. 1980년대 인터롭의 창시자.

단 린치(Dan Lynch)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넷월드+인터롭 무역쇼의 전신인 인터롭을 우리에게 준 사람이다. 그는 또한 인터넷이 상업용으로 생존 가능한 존재로 진화되는 핵심에 있었던 지불처리 회사인 사이버캐시(CyberCash)를 설립하기도 했다. 완전히 기술쪽을 떠나진 않았지만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세인트 헬레나에 있는 포도주 양조장을 사서 포도를 재배하며 노동의 열매를 맛보고 있다.

SRI 인터내셔널에 있는 컴퓨터 공장의 공장장으로서 린치는 ARPANET(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를 TCP/IP로 변모시키는 팀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이행 및 장애관리의 큰 역할을 해냈는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일이 잘 되도록 인터넷 투자자들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ARPANET에 의해 사용되는 기술이 “세계를 점령할 것”이라고 믿긴 했지만 이것이 실현되기 시작하는 것을 본 때는 1988년 캘리포니아주 산타 클라라에서 최초의 인터롭이 열렸을 때였다.

사실 이 최초의 쇼는 공식적으로 ‘어드밴스드 컴퓨팅 인바이런먼트(Advanced Computing Environments)’로 불렸으며, 주로 교육과 상호운용성 시연들로 짜여져 있었다. 그 의도는 회사들이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접속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만들고 이들이 작동하도록 연결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약 50개 업체들이 참여했으며, 이 쇼를 간단히 ‘인터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첫 해 참가자들은 5천명이었으며, 아폴로, 시스코, 프로테온, 썬, 웰플릿 등의 업체들이 만든 전용망이 자동차 제조업체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세 명의 해커들이 포드에서 회사 임원을 데리고 왔을 때 린치는 이 날이 자신의 기념일이 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보세요. 잘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임원이 그 자리에서 구매 주문서에 서명을 하도록 설득했다.

당시 이 업계는 업체들이 서로에게서 배우고 사용자들이 무엇을 구입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될 필요가 있었다고 린치는 말했다. 그는 이제 몇 년 째 무역쇼에 가지 않고 있지만, 그러한 공동체에 대한 필요성이 여전히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린치는 계속해서 사이버캐시를 만들었으며, 이 회사는 2001년 챕터 11 상태로 들어가 북미지역 지불 서비스 사업을 베리사인(VeriSign)에게 경매로 넘겼다. 그러나 당시 사이버캐시는 붕괴된 기술과 규제의 장벽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전자 상거래의 길을 열고 금융 업계의 잠을 깨워 진보로 향하게 했다.

1995년 이래 린치는 주로 민간 벤처 투자자로 활동을 했다. 무선 기술에의 투자도 그의 말을 빌자면 ‘재미있기 때문에’ 고려하고 있지만, 그 유혹에는 저항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선 시장이 결국은 통합쪽으로 가고 살아남는 사업자는 몇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아이들을 위한 캠프 벤처 크릭(Camp Venture Creek)과 같은 자선 활동을 하고, 자신의 아이들과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와인 사업을 하면서 그의 말에 따르면 ‘예약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음식점에 투자도 하고 있다.


회사

헤이즈

아, 모뎀. 그 어떤 것도 변조(modulation)와 접속이 내는 달콤한 사운드에 비할 수는 없었으며 그 리드 싱어는 바로 헤이즈(Hayes)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헤이즈라는 회사는 없지만 헤이즈 아날로그 모뎀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으며, 이 제품을 내놓고 있는 곳은 지난 1999년 도산 업체로부터 헤이즈란 이름과 자산을 사들인 줌 테크놀로지스(Zoom Technologies)의 자회사, 줌 텔레포닉스(Zoom Telephonics)란 곳이다. 헤이즈란 브랜드는 영국에서 언제나 성공적이었으며 여전히 이 곳에서는 강력한 존재로 남아 있다. 회사측에 따르면 헤이즈 마이크로 시큐라(Hayes Micro Secura)와 옵티마(Optima) 라인이 계속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케이블과 DSL 모뎀뿐만 아니라 블루투스와 디지털 카메라까지 영역을 확장시켰다고 한다.


반얀
기술에 대한 완고한 고집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이것은 보통 챔피언과 기술(더 뛰어난 경우가 많은)에 우리가 굴복하지 않게 동기를 부여하며 마이크로소프트나 다른 거대 업체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한 때는 애플과 반얀(Banyan)이 이런 존재였고, 오늘날에는 애플과 리눅스다.

반얀의 경우는 이 회사가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늘 시대를 앞서간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들과 달리). 1983년 데이터 제너럴(Data General)의 임원이었던 데이비드 마호니(David Manhoney)와 그 동료인 반얀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다른 많은 하이테크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하드웨어 및 OS 사업자로 첫 발을 내딛었다. 사실 기업쪽 사람들은 반얀의 제품이야말로 최초의 네트워크 운영시스템 및 디렉토리 서비스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사의 바인스(Vines) NOS는 결국 노벨 네트웨어, 쓰리콤 3+ 랜 및 마이크로소프트 랜 매니저 등과 경쟁을 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반얀의 진정한 유산은 스트리트토크(StreetTalk)로, 이 디렉토리 서비스는 이례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노벨이 둘 다 본을 따 훨씬 더 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반얀의 뿌리는 현재 유니시스에서 인수중인 서비스 회사, 이프레전스(ePresence)에서 아직도 잘 살아 있다.

반얀은 1992년 상장했지만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와 노벨이 침을 흘리게 만든 시장을 만들어내느라 애를 썼다. 1994년에는 비욘드메일(BeyondMail) 제품 라인을 위해 비욘드(Beyond)를 인수해 제품을 다각화시켰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노벨과 달리 반얀은 폭넓은 마케팅에 실패했으며 강력한 채널 전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1997년에는 빌 페리가 마호니 대신 CEO 자리에 앉아 한 차례 개혁을 시도했다. 반얀은 자사 기술을 몇몇 프리 IOP 회사의 지분과 맞바꾸었으며, 자사의 핵심 자산인 기술, 고객 로열티 및 많은 디렉토리 컨설턴트들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서비스 회사로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 이르자 반얀은 많은 현금과 인재를 보유할 수 있었다. 2000년에는 온라인 디렉토리인 스위치보드닷콤(Switchboard.com)을 공개시켜 훨씬 더 많은 흑자를 볼 수 있었다.

닷콤 분야의 신동들이 레이저피시(Razorfish), 사이언트(Scient) 및 바이언트(Viant) 등과 같은 풀 서비스 회사들을 만들어내면서 e프레전스의 선임 부사장이나 제너럴 매니저인 스콧 실크는 반얀이 회사의 핵심 역량인 디렉토리를 재평가하고 포커스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프레전스는 이 기술을 중심으로 컨설팅과 매니지드 서비스, 그리고 통합 부문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으며 반얀 제품들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붕괴의 시간이 왔다. 그러나 이프레전스는 살아 남았으며 신원정보 관리로 향하는 추세로 인해 이프레전스의 전문 기술이 쓰일 수 있는 니치 시장이 만들어졌다.

유니시스가 인수한 이프레전스의 서비스 부문은 ‘유니시스’로 개명될 것이다. 이로 인해 이프레전스는 인지도를 얻게 되고 넓은 세계 무대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며, 세계적인 사업 역량을 갖추고 신원정보 관리를 포함하게 될 보안 부문에 역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실크는 말했다.

주 경쟁 사업자로는 IBM 글로벌 서비시즈(IBM Global Services)와 IBM이 인수하지 않았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즈(Price Waterhouse Coopers)를 꼽을 수 있다.


아티소프트
피어 투 피어(P2P) 네트워킹이 시작된 곳은 방화벽 밖에서도 아니고 개인들 사이에서도 아니고 인터넷에서도 아니다. 그 시작은 잭 스쿠프가 설립한 프린터 서버 및 PC 클론 업체인 아티소프트가 랜태스틱(LAN-tastic)을 개발한 1980년대에 랜에서였다. 다른 업체들처럼 아티소프트는 곧장 노벨의 피어 투 피어 제품인 네트웨어 라이트(NetWare Lite)로 곤란을 겪게 되었으며, 여기에 이어 피어 네트워킹 기능이 포함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95가 나타나 이들을 제압했다.

1990년대에 아티소프트는 네트워킹 하드웨어와 모뎀 소프트웨어, 컴퓨터 텔레포니로 핵심 분야를 옮겼다. 보다 최근에는 자산을 매각하고 인력을 감축하며 네트워크 기반 음성 시장으로 주의를 돌리고 있다.


기타 최고들

프로테온
다중프로토콜 라우터 제조업체들 가운데 최초인 프로테온(Proteon)은 1997년 오픈라우트(OpenRoute)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2년 후 이 회사는 네트릭스(Netrix)에 인수되었으며 네트릭스는 NX 네트웍스가 되어 2001년 파산신고를 한 VoIP 서비스 사업자다. 다음 해 비공개 통신 기술 개발업체인 NSG데이터닷콤이 이 회사의 자산을 인수했다.

로버트 메지에게는 하나 비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토큰링이었다. 토큰링은 오늘날 RPR의 전신으로서 잘 돌아가고 지원되었다. 메지 네트웍스의 설립자는 또한 화상회의도 구상했는데, 이것은 이제 자기 자리를 찾고 있다. 게다가 그는 서비스 회사인 메지닷웹(Medge.web)을 계획했으며, 이 회사를 통해 네트워킹, 음성, VPN 및 웹 호스팅을 제공하고자 했다. 메지닷웹은 잠시 운영되다가 문을 닫고 말았다.

현제 메지 네트웍스는 무선을 차기 주자로 생각하고 있으며 최근 자사의 WLAN 프로브 2(WLAN Probe 2)와 프로브 모니터(Probe Monitor) 제품 업그레드를 발표한 바 있다. 다음 번에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날리지웨어
미네소타 바이킹스의 쿼터백이었던 프랜 타켄턴(Fran Tarkenton)을 선두로 한 이 소프트웨어 업체는 마침내 스털링 소프트웨어(Sterling Software)에 매각되었으며, 이 회사는 2000년 컴퓨터 어쏘시에이트에게 매각되었다.
한편 1999년에는 시큐리티즈(Securities)와 익스체인지 커미션(Exchange Commission)이 전 날리지웨어 임원들에게 금융 사기혐의로 민사 소송을 청구한 바 있다. 법원에서는 타킨턴에 대해서만 총 10만달러의 벌금과 징역을 선고했다.

볼랜드
볼랜드(Borland)는 볼랜드로 다시 태어났다. 그 쿼트로 스프레드 시트 소프트웨어를 기억하는가? 디베이스(dBASE) 제조업체인 애쉬톤 테이트(Ashton-Tate)를 인수한 것은 어떤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폭스프로(FoxPro)를 인수하고 볼랜드 사업의 디베이스 부문을 철저히 진압해 버린 일은 기억이 나는가? 볼랜드는 1998년 인프라이즈(Inprise)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2001년에는 이것을 다시 볼랜드로 바꾸고 자바 개발에만 집중했다.

마림바
이 회사의 목표는 모바일 전화기와 메인프레임에서 모바일 전화기와 주식 시세에서부터 운영시스템 업데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푸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품이 붕괴되자 마림바(Marimba)는 데스크톱 관리 업체가 되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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